인권 교육, 윤리적 추심의 시작: 금융 발전을 위한 따뜻한 길
한영섭 (채무자인권센터장)
금융은 우리 사회의 혈맥과 같다. 하지만 때때로 그 흐름 속에서 차가운 현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히 채권 추심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금융의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숫자의 논리, 회수의 효율성만 강조되다 보면, 빚의 무게에 신음하는 채무자의 인권은 너무나 쉽게 잊히곤 한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떠올려보자. 홀로 아이를 키우며 밤낮으로 일하는 한 여성에게 추심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직장에까지 연락해 동료들이 듣는 앞에서 망신을 주고, 심지어 새벽 시간에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이는 단순히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넘어선 명백한 인권 유린이자 정신적 폭력이다. 법의 테두리가 존재함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현실은, 법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윤리적 채권 추심' 문화의 정착에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채권자(금융기관 포함)와 채권 추심 업무 담당자에 대한 인권 교육 의무화이다. 이 교육은 단순한 법규 전달을 넘어, 채권자와 추심 담당자가 채무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법률과 윤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하도록 이끄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왜 채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지, 비인격적인 추심이 가져오는 사회적, 개인적 폐해는 무엇인지 깊이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자는 인권 교육 의무화가 금융기관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비용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인권 교육과 이를 통한 윤리적 채권 추심의 정착은 결코 금융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금융 생태계를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첫째, 윤리적 추심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줄인다. 폭언, 협박 등 비인간적인 추심은 채무자의 극단적 선택, 정신 건강 악화, 노동 능력 상실 등으로 이어져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또한, 이는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끝없는 민원과 소송으로 이어져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막대한 행정 비용을 발생시킨다. 윤리적 소통은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 전체의 부담을 덜어준다.
둘째, 윤리적 추심은 장기적으로 채권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 강압적인 추심은 채무자를 회피하게 만들거나 재기 불능 상태로 내몰아 오히려 회수 가능성을 없애버린다. 반면, 채무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현실적인 상환 계획 수립을 가능하게 하고, 채무자의 자활 의지를 북돋아 잠재적인 상환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이는 '파괴적 회수'가 아닌 '건설적 해결'로 나아가는 길이다.
셋째, 윤리적 추심 문화는 금융 산업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한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금융기관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이러한 신뢰는 금융 상품 이용 증대, 우호적인 여론 형성으로 이어져 금융기관의 장기적인 성장에 기여한다. 특히, 국제 사회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지는 지금, 채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윤리적 경영은 금융기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외면하는 과거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인권 존중이라는 토대 위에 더 성숙하고 발전된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가. 채권자와 추심원에 대한 인권 교육 의무화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다. 이는 윤리적 채권 추심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우리 금융이 더 따뜻하고 신뢰받으며, 궁극적으로 더 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이다. 금융계와 정책 입안자,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함께 나아가야 할 때다.
'채무인권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빚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어요... (0) | 2025.01.24 |
---|---|
한국에서 채무자인권의 현실은 (0) | 2025.01.24 |
채무자인권 왜 중요할까요 - 채무자도 사람입니다. (0) | 2025.01.24 |
[카드뉴스]불법사금융을 뿌리뽑기 위한 「대부업법」 개정 (0) | 2024.12.30 |